일하지 않을 권리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반론

데이비드 프레인

2015

당신에게 묻고 싶다. 하루의 업무는 언제 시작되고, 언제 진정으로 끝나는가? 아마 많은 이들이 직장에 발을 들이고 나가는 순간이나 근태 기록 등을 근거로 이 질문에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업무 외의 시간에도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일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으며 좌우된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은 사적인 삶을 즉시 내팽개쳐도 되는 정당한 사유가 되었고, 여행을 가거나 병원 진료를 받을 때조차 업무상 차질이 없도록 모든 것을 완벽히 배치해둔 뒤에야 겨우 안심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비노동 시간의 잠재적인 목적은 오직 사람들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다. 즉, 자유 시간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 세계가 ‘노동이 곧 정의이며, 노동이 곧 도덕’이라는 가치관을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관에 인도되어 많은 이들이 일을 위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노동과 삶, 과연 어느 쪽이 수단이어야 하고 어느 쪽이 목적이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삶이 곧 정의이며, 삶이 곧 도덕’이라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의 경우만 보더라도, 입사 초기 몇 년간의 ‘밀월기’에는 연휴가 너무 길다고 느끼곤 했다. 황금연휴가 7일씩 이어지면 마지막 며칠은 지루함이 밀려와 어서 빨리 출근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일찍이 사람들이 여가 시간의 증가가 가져올 무료함을 걱정한다면, 우리는 이를 “현재 우리 문명에 대한 규탄”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 시대는 여가 시간의 무료함을 규탄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규탄하는 것은 ‘일하지 않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것은 곧 부정이요, 일하지 않는 것은 곧 부도덕이라 여겨진다. 자기소개를 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질문을 떠올려 보라.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사실 “당신이 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 나는 당신의 대답에 근거해 당신을 평가하겠다”라는 뜻이거나, 혹은 “당신은 알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시대에, 현대 사회에서 노동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위기로 인해 능동적으로 ‘각성’했든, 사회적 환경에 의해 수동적으로 ‘탕핑(누워 있기)’을 선택했든 말이다. AI 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 이 책에 담긴 사유는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당장 ‘노동에 거부 선언’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저자가 말했듯 다음과 같은 성찰이 필요하다.

나는 노동의 의미와 미래를 둘러싼 생기 넘치고 진보적인 토론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방식이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임을 기억하고, 노동을 분배하는 다른 가능성들을 탐색하기를 희망한다. 전통적으로 노동 안에서 찾았던 즐거움과 연대의 기쁨을 경험할 다른 통로가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노동 밖에서 다양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권리를 옹호하고,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 게임에 덜 가담하면서 자아를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경제 성장을 국가 번영의 척도로 삼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근본적으로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진보와 행복에 관한 또 다른 비전, 즉 건강과 자유 시간, 잠재력을 실현할 권리와 같은 비물질적 자산에 기초한 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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