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카테고리:] 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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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자서전
최근 한 친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숲속을 한참 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대답했다. ‘특별한 건 없었어.’ 만약 내가 그런 대답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믿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눈이 있는 사람일수록 정작 보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해 왔기 때문이다.
——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의 일생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로맹 롤랑의 이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진정한 영웅주의가 있다. 그것은 세상의 참모습을 보고 나서도, 여전히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

데일 카네기의 링컨 이야기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뼈와 근육을 수고롭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처지를 궁핍하게 하여 그가 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하느니라.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드려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바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맹자』
링컨은 위인인가?
아니다, 링컨은 위인이 아니다.
링컨은 성인이다. -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슬픔과 시름에 잠기지만, 이윽고 별들이 점화되어 저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 윈스턴 처칠, 『강 전쟁』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처칠에 대한 정보라고는 역사 교과서에 실린 서너 줄의 문장이 전부였을 뿐, 인간 처칠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웠다. 문득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처칠을 읽는지 궁금해져 호기심에 이 대작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나 또한 그의 매력에 빠져들어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처칠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자는 책의 결말에서 서른 개가 넘는 명사를 동원해 그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나 또한 그 뒤를 따라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 처칠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째, 처칠은 뼛속까지 진정한 귀족이었다. 평생 의식주 전반에 걸쳐 누군가의 수발을 받아야 했고, 그런 태생적 배경 탓에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 기술조차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스스로 공복이 되기를 자처했다. 평생을 국가에 헌신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데 바쳤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 처칠은 직접 발로 뛰며 동맹을 결속시킨 통합의 아이콘이었다. 동쪽에서 매를 맞는 동맹국과 서쪽에서 매 맞기를 주저하는 동맹국을 하나의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은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스스로 여행가가 되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총리이자 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한 1,900일 동안, 그는 배와 기차, 비행기를 갈아타며 총 11만 마일을 여행했다. 카이로 4회,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각 3회, 퀘벡 2회, 그리고 버뮤다, 테헤란, 카사블랑카, 이탈리아, 노르망디, 파리, 몰타, 얄타, 아테네, 벨기에, 베를린.
처칠은 뛰어난 문필가이자 웅변가였다. 노벨 문학상은 그에게 있어 지고지순한 영예였으며, 한림원은 “역사적·전기적 묘사의 숙련함과 고귀한 인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보여준 찬란한 웅변”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동시에 그는 유머의 달인이기도 했다. 해방된 직후의 파리를 방문했을 때, 그는 연설에 앞서 청중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여러분께 경고 하나 하겠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저는 지금부터 프랑스어로 말할 작정입니다(혹은 시도할 것입니다). 이는 매우 끔찍한 임무이며, 영국에 대한 여러분의 우정을 시험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처칠은 부정할 수 없는 울보였다. 어쩌면 풍부한 감정 표출 덕분인지, 과도한 음주에도 불구하고 90세까지 장수하며 생존의 전설이 되었다. 그는 생전에 국왕, 동료, 연합군 등 수많은 친숙한 얼굴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노년의 그는 정계의 마스코트이자 살아있는 신화였으며, 후배 정치인들이 추앙하는 불멸의 아이콘이었다.
처칠의 생애는 ‘위인’이라는 두 글자의 정의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한 사람이 처칠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후회 없는 삶’이라 불릴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

오보카타 하루코 일기
오보카타 하루코의 수기 『그날』을 읽고 난 후, 나의 내면에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는 파문이 일었다. 그것은 과학적 진실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의 진실—그 비정함과 무심함—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명이 다할 것 같다고 느꼈을 때, 눈앞에 떠오른 것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촛불이었다.
생명이란 이 차갑고 회색빛인 세계 속에서 무력하게 흔들리는 가느다란 등불과도 같다. 전신을 휘감는 우울, 병마에 유린당한 육체, 잠 못 이루는 밤. 약의 힘을 빌려 겨우 잠들어도 깨어나기 전까지 이어지는 악몽의 연쇄. 분노, 억울함, 의구심, 고독, 공포…… 매 순간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을 잠식한다. 그 모든 것에 맞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끝없이 흐르는 눈물뿐이다.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본능이었다. 몇 번이고 그 간절함을 경험하고, 차라리 불어서 꺼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면서도 필사적으로 지켜내고 있었다.
그것은 희망일까? 판도라의 상자 바닥에 봉인된 마지막 희망. 보이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희망.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고통과 고문을 안겨주기 위해 존재하는 희망. 우스꽝스러운 희망. 죄악스러운 희망.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는 분명 사람이 살아가게 만드는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
줄곧 나 혼자만의 불꽃을 지켜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촛불이 꺼지려 할 때, 기꺼이 불꽃을 나누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가장 신뢰하는 벗들이 보내주는 우정이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가족들의 사랑이다. 사회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준 이들의 동정이며, 자신을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인간으로 대해준 모든 이들의 공감이다. 그것은 곧 ‘사랑’이다. 사랑이 있기에 이 세계는 비로소 온기를 띠고 색채를 얻는다.
나는 나누어 받은 불꽃을 다시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갈 것이다. 오늘의 일기에는 그렇게 적을 생각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MBTI가 화제에 오르곤 한다. 상대방이 INTP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늘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 그럼 당신은 아인슈타인 형이네요.” 그러면 거의 모든 사람의 반응은 이렇다. “에이, 저 같은 게으름뱅이가 어떻게 그 천재와 비교가 되겠어요.”
그렇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거대해서, 멀리서 묵묵히 우러러볼 뿐 그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인슈타인은 ‘위인’이기 이전에 당신과 나 같은 ‘범인’일 뿐이었다고 말이다.
위인과 범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가장 큰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인은 인류의 운명과 발맞추어 나아갈 수 있지만, 범인은 때로 자신의 운명조차 좌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삶 속에서는 우리와 닮은 성격적 특징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는 고고하고 반항적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특허국에서 묵묵히 일해야 했다. 그는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고집스러운 실수도 저질렀다. 회의적인 정신으로 타인의 학문적 보수성을 타파했지만, 새로운 이론이 자신을 ‘얽힘’할 때면 오히려 자신의 ‘장’ 안에 고립된 채,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 신”을 끝내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자유를 숭상했지만, 격동의 세월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채 방랑의 길을 걸어야 했다.
책에는 이런 일화도 기록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이 찰리 채플린과 함께 극장에 들어섰을 때,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환호하는 건 나를 이해하기 때문이고, 당신에게 환호하는 건 아무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이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고독은 바로 당신과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범인의 고독’이었던 셈이다.
아인슈타인은 천재인 동시에 범인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내가 INTP인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이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길 기대해 본다. “맞아요, 저도 아인슈타인과 같아요.”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