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 1,500년 중일 관계의 역사를 직시하다

에즈라 보걸

2019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는 일본에 관한 두 가지 단편이 남아 있다.

외할아버지의 방에는 동서양의 명저들이 가득 꽂힌 커다란 책장이 있었다. 그 책장의 유리문에는 커다란 붉은 천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힘 있는 붓글씨로 ‘중일우호’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네 글자가 짊어진 감정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다.

고모는 젊은 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한 일본인 남자를 만났고, 그는 후에 나의 고모부가 되었다. 고모가 처음으로 고모부를 데리고 중국에 돌아와 가족 모임에 참석했을 때,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못 하는 이 일본인을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도쿄의 한 병원에서 고모를 도와 고모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혈육의 정은 이미 오래전에 국경을 초월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중일 양국 관계를 한 단어로 형용한다면, 나는 ‘애증과 은원’이라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바로 중일 관계에 착목한 저작으로, 특히 양국이 서로를 깊이 배우려 노력했던 세 역사적 시기인 수·당 시대, 청말민초, 그리고 개혁개방기에 주목한다. 중일 양 민족 사이의 얽히고설킨 감정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이나, 혹은 한쪽의 역사만 알고 있어 상대측의 시각을 함께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단연코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추천작이다. 저자인 에즈라 보겔 교수는 책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상대 국가를 싫어하는 많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서양인이 쓴 중일 관계 서적에 흥미를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아무리 정확하게 쓴들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양국 국민 중 나와 마찬가지로 중일이 서로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다. 양국 모두에 독자를 둔 관찰자로서, 나는 이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느낀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이미 알고 있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이 책이 전해준 ‘긍정적인 에너지’의 감정이다. 이 책은 보겔 교수가 타계하기 전 남긴 마지막 저작이다. 평생을 바쳐 중국과 일본을 연구한 보겔 교수가 인생의 마지막 감정을 이 한 권의 책에 기탁했으니,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 책의 중국어판 역자 서문에는 매우 함축적인 구절이 등장한다.

어느 서구 학자는 최근 중일 간의 갈등을 ‘미안해’와 ‘고마워’라는 두 마디로 형용했다. 중국은 늘 일본을 비난한다. ‘미안해’라는 말을 너무 적게 하며, 그마저도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개혁개방 이후 일본의 막대한 경제 원조 덕분에 중국의 경제적 기적이 가능했음에도, 중국이 충분한 감사를 표하지 않으며 ‘고마워’라는 말을 아낀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문장은 한일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일례로 일본의 한 인기 정치인이 TV 생방송에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한국에 ‘진보’를 가져다주었으니 한국은 일본에 더 감사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민간의 영역으로 들어와 내 주변을 살펴보면, 국가 간의 문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경험한 일상은 회사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동료들이 함께 노래방에서 『여인화』를 합창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들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꺼이 애국자가 되겠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고 싶다. 만약 두 가지를 겸할 수 없다면 나는 언제나 ‘인간’을 택하겠다.” 나의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노련한 혁명가이자 당원이셨지만, 나는 그분들에게서 어떠한 증오의 언사도 들어본 적이 없다. 보겔 교수와 마찬가지로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우정이 영원하기를 갈망하는 것이야말로 그들 세대의 가장 소박한 진심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그 붉은 천.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선조들 또한 ‘일의대수’라 이름 붙여진 화권 위에 그들의 필묵을 휘두르지 않았던가. 나는 우리 세대, 나아가 우리 뒤의 세대들까지도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운 미덕을 계승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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