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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이 책은 철학, 평행우주, 존재, 그리고 ‘살아있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후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후회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진부한 주제다. 후회와 관련하여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는 “나는 지나간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는 지금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선언이다. 누구나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갈망하지만, 과연 현실 세계에서 그것이 진정 가능한 일일까? 이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후회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는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덕분에 우리의 사고는 아무런 제약 없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종횡무진 오갈 수 있다. 우리는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점을 기준 삼아 앞으로 펼쳐졌을지도 모를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상상력은 과거의 사건을 뇌 속에서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과거의 그 시점으로부터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존재하는 자아가 생겨난다. 하나는 재구성된 가상 세계 속의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 속의 자아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이 두 세계의 자아를 비교하게 된다. 그 결과 현실 세계 속 자아의 처지가 더 고달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느끼며 과거 그 시점에 내렸던 자신의 선택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와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이 바로 ‘후회’의 본질이다.

    후회가 발생하는 본질을 이해하고 나면, 후회라는 경험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후회라는 감정을 원천적으로 회피할 수도 없다.

    왜 후회의 발생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가? 과거의 그 당시에 우리는 자신이 내린 선택을 미래에 이토록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앞으로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을 생생하게 느끼면서도, 당시의 감정적 저울질 끝에 어쩔 수 없이 그 선택을 감행하기도 한다”라고 말이다. 그러한 상황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과거의 그 순간에 이미 미래의 후회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도리어 후회라는 과정의 ‘불가피성’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후회가 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그 자체로 고통과 죄책감을 수반한다면, 우리는 이제 후회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첫째, 담담하게 마주하라. 이 세상에 후회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후회 목록을 품고 살아간다. 후회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우리가 가진 후회를 똑바로 직시하기를 바란다. 둘째, 내려놓으려 시도하라. 만약 ‘가장 완벽한 인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와 똑같은 논리로 ‘가장 최악인 인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지금의 인생이 과거의 ‘잘못된’ 선택들이 불러온 인과응보의 결과라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 역시 그 지나온 과거의 연장이자 보답이다. 셋째, 미래를 개선하라. 후회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감정의 시간과 깊이는 우리가 그 후에 어떤 적극적이고 정향적인 행동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후회를 반추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의 삶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후회는 우리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되며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회랑을 영원히 배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 바깥은 여름

    바깥은 여름

    “제가 이해하는 삶이란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의 모든 것이랍니다.”

    ‘상실’에 관한 7가지 단편. 저자는 사실적인 필치로 현대 사회 속 평범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을 그려냈다.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수작이다.

  •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한국어 수업 시간

    선생님: 요즘 어떤 책 읽고 있어요?

    나: 소설. 한국 작가 김애란가 쓴 《바깥은 여름》이라는 책이에요.

    선생님: 어떤 내용이에요?

    나: …… (머리를 쥐어짜며 단어를 찾고, 문법을 맞추고, 겨우 한 문장을 내뱉는다. 이 과정에서 뇌세포가 엄청나게 타버렸다.)

    선생님: 저도 요즘 소설 읽고 있어요.

    나: (방금 전 멘붕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 ……

    선생님: (나를 빤히 바라보신다) ……

    나: (재접속 성공) 무슨 소설이에요?

    선생님: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카와무라 겐키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에요.

    선생님: (줄거리를 설명하기 시작하신다) 주인공 ‘나’가 암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이 돼요.

    나: 시-한-부-인생?

    선생님: 네, ‘시한부 선고’. 즉, ‘여명 선고’라는 뜻이에요.

    (딩동, 한국어 어휘 +1)

    선생님: (계속해서 줄거리 설명 중) 어느 날 악마가 나타나서 ‘나’에게 내일 죽을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주변의 물건 하나를 없애면 수명을 하루 연장해 주겠다고 하죠. 당신이라면 뭘 없애겠어요?

    나: …… 고양이요?

    선생님: 처음부터 바로 고양이라고요?! 하하, 소설 속 주인공은 전화기, 영화, 시계를 골랐어요. 더 이상은 ‘스포’ 안 할게요.

    나: 스-포?

    선생님: 네, ‘스포일러’를 줄여서 ‘스포’라고 해요.

    (딩동, 한국어 어휘 +2)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마존에서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그 책을 바로 샀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학 시절,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알렉상드르 뒤마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작품들을 찾아 읽곤 했다. 한편으로는 영어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어 서점에서 산 댄 브라운의 원서들과 씨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과 여학생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예닐곱 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까운 시간에 다른 책들을 더 읽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왜 이 책을 그토록 여러 번 읽게 되는지 말이다. 이 책은 진정으로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명작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사랑하는 이유를 밝혀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라는 캐릭터 설정이다. ‘난세의 가인’이라는 제목만 본다면, 난세를 배경으로 한 단순한 로맨스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인생을 매우 심도 있고 갈등의 연속으로 묘사한 걸작이다. 그 갈등과 깊이는 바로 스칼렛 본인에게서 나온다. 첫사랑에 대한 집착, 아일랜드인의 혈통, 모질면서도 연약한 면모, 끈기와 타협… 이 모든 것들이 모여 현실감이 넘치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 책에 스칼렛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독서 스타일로는 한 권을 여러 번씩 읽지는 않겠지만, 만약 다시 한번 읽게 된다면 내가 아끼는 또 다른 인물인 멜라니 해밀턴을 마음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혹은 떠도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시대의 격변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은 구세계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 굴레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스칼렛과 같은 불굴의 생명력이며, 구습을 경멸하며 자유롭게 살았으나 사랑이라는 안식처를 갈구하며 고뇌했던 레트와 같은 용사이다. 또한 자신의 운명을 다스릴 힘이 없었던 남부 구질서의 상징 애슐리와 같은 이들이며, 구세대의 가치를 믿으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꿋꿋이 나아갔던 멜라니와 같은 용감하고 성결한 영혼이다. 동시에 그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린 수많은 평범한 개인들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동화 선생의 번역본을 매우 좋아한다. 이 책은 1940년 일본군 점령하의 상하이에서 번역되었다. 당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상하이에서 개봉된 후 “상하이 주민들 사이에서 대단한 열풍을 일으키며 외국 영화 상영 이래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부 선생은 비록 번역 일에 다소 회의를 느끼고 있었으나, 원작을 읽고 나선 “확실히 번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일본에는 이미 두 개의 번역본이 있고 모두 잘 팔리고 있다”는 친구의 부추김이 더해졌고, 이에 부 선생은 “그들에게 있는데 우리에게 없을 리 있겠는가?”라는 확고한 의지로 이 대작의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당시의 상하이 역시 하나의 ‘난세’가 아니었을까. 시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번역본 속에 이따금 등장하는 강절 지방의 방언 섞인 문장들을 마주할 때면 아련한 향수가 피어오르곤 한다.

  • 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

    학창 시절 읽었던 책은 거의 대부분 소설이었다. 한 번은 연구실 선배가 나에게 “비문학 서적을 좀 더 읽어보게. 소설은 그리 큰 의미가 없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상아탑을 떠나 사회에 발을 내디딘 후에야 비로소 그 관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 세계에 대해 더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지금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이야기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반면 소설은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점차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소설을 조금 가볍게 여기기까지 했다. 마치 휴식을 취할 때 가끔 먹는 정크푸드처럼 말이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를 읽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이 책이 나에게 준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바로 ‘충격’이다. 그 충격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전쟁과 평화』는 하나의 서사시다. 웅장한 전쟁 장면의 복원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광활한 상상력 속에 침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톨스토이는 리얼리즘의 거장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소설 속 인물들의 곁에 서 있는 듯한 임상감을 느끼게 되며,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또렷이 보고, 그들의 대화와 독백을 들으며, 그들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체감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문장력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아래 구절처럼 시각적 이미지가 매우 강렬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그러하다.

    로스토프가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의 얼굴은 홀연히 변했다. 그것은 사방에 정교한 조각과 채색이 된 등불과 같았다. 원래는 투박하고 어둡고 보잘것없어 보였으나, 일단 그 안에서 불이 켜지자 이 복잡하고 정교한 예술품은 돌연 예상치 못한 놀라운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마리아 공녀의 얼굴이 갑자기 변한 것이 바로 그러했다.

    『전쟁과 평화』 속에는 역사에 대한 탐구와 철학적 사유가 종횡으로 엮여 있다. “역사 속 영웅의 의지는 대중의 활동을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늘 인도당하는 쪽이다”라고 톨스토이는 썼다. 자유, 죽음, 종교, 사랑 등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제에 대해, 어느 순간 나는 피에르의 머릿속에서 내가 했던 생각을 발견하고 경악하며, 다음 순간에는 안드레이 공작의 눈을 통해 내가 보았던 환영을 목격한다. 독자인 나는 수시로 읽기를 멈추고 사색에 잠겨야만 한다. 그 질문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려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결국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책들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 첫 장을 펼치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나에게 있어 『전쟁과 평화』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내 마음속 ‘소설’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다시 세워주었다.

  • 카프카와의 대화

    카프카와의 대화

    아버지는 크게 당황하여 그저 바닥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카프카 박사가 집무 책상 앞에 앉아서야 아버지는 겨우 다시 말을 엮어냈다.
    “박사 선생, 당신은 반역자요.”


    “안타깝게도,” 카프카가 말했다. “내가 가담한 것은 가장 진을 빼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봉기입니다.”


    “누구에 대한 저항인가?”


    “나 자신에 대한 저항입니다.” 카프카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안락의자에 몸을 기댔다. “나 자신의 한계와 나태에 대한 저항이지요. 근본적으로는 이 집무 책상과 이 의자에 대한 저항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유독 깊은 인상을 남긴 두 편의 글이 있다. 한 편은 루쉰의 《약》인데, 기억에 많이 남는 이유는 수업 시간에 이 작품으로 직접 연극을 하며 내가 인혈 만두를 사러 가던 늙은 아버지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편은 카프카의 《법 앞에서》였다. 다만 이 글이 기억에 남은 것은 내용이 심오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추상적이고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학생에게 추상성과 신비로움이란 곧 ‘고상함’을 의미했다. 이는 마치 어떤 친구가 요즘 니체를 읽고 있다고 말했을 때, 김용의 무협 소설을 읽고 있던 내가 완전히 기가 죽어 아무 말도 잇지 못했던 순간의 느낌과 비슷하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카프카 중단편 소설 전집》을 펼쳤고 그곳에서 《법 앞에서》를 다시 만났다. 그간 인생의 연륜이 제법 쌓였으니 학창 시절의 나보다는 이 글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자만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다시 읽은 그 글 속의 우화는 도저히 그 속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더욱 모호해져 있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손에서 태어난 모든 문장이 나에게는 그저 지난하고 난해하게만 다가왔다.

    그 후 나는 이 책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었다. 그제야 나는 왜 이토록 카프카를 읽어내지 못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카프카라는 ‘인간’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카프카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법학 박사였으나 노동자재해보험공단에 다니는 평범한 직원이었다.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역자’였고, 그의 절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의 묘사에 따르면 ‘집 없는 이방인’이었다. 카프카에게는 자신의 집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집이라고요?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나만의 작은 방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집이 아닙니다. 내 안의 불안을 가려주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나를 그 안에 더욱 깊이 침잠시키는 은신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문학 창작이란 카프카에게 어쩌면 낮 세계의 현실과 자기 자신에게 저항하기 위한, 무력한 수단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 음울한 불면의 밤들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밤들로 인해 나는 내가 어둠의 고독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다시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카프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컨대 《변신》을 읽으며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를 연상하지만, 이는 결코 저자가 창작 당시에 의도했던 본래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의 경험과 카프카의 인생 사이에 과연 얼마만큼의 공통분모가 있겠는가? 애초에 우리의 삶에 카프카가 필요하기는 한 걸까? 카프카 스스로가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다.

    “우리는 삶으로부터 수많은 책을 비교적 쉽게 짜낼 수 있지만, 책으로부터 삶을 짜낼 수는 없다.”

    우리가 카프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낮이 밤의 어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카프카를 읽고 싶어 한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카프카라는 인간을 알아버린 이상, 빛 한 줌 들지 않는 고독과 절망으로 가득 찬 그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 속에 그를 차마 혼자 외롭게 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다.

  • 오쿠로 가는 작은 길

    오쿠로 가는 작은 길

    길에 병드니 / 꿈은 마른 들판을 / 헤매고 도네.

    — 마츠오 바쇼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대저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이요, 광음은 백 대를 거쳐 가는 나그네다.” 이는 당나라의 시인 이백이 733년에 써 내려간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다. 그리고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츠오 바쇼는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서두에서 마치 이 문장에 화답하듯 이렇게 적었다.

    해와 달은 백 대의 나그네이며, 오고 가는 해 또한 여행자다.

    옛 문인과 지사들이 조정의 높은 곳에 처해 국정을 걱정하거나, 혹은 강호의 먼 곳에 머물며 마음속 무릉도원을 그렸다면, 마츠오 바쇼는 오롯이 여행을 길 위에서 인생을 깨달아갔다. 이 하이쿠 성인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이 기행문에서, 내가 유독 아끼는 몇 대목을 골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가는 봄이여 / 새는 울고 / 물고기 눈에는 눈물.

    옛사람들에게 먼 길을 떠나는 여행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길을 나서는 순간에는 평소에 더없이 평범하게 보였던 사물과 풍경조차 나그네의 마음에 서글픈 감정을 더하곤 했다. 그러나 이별의 슬픔이 비단 여행의 시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정의 후반부에 이르러, 줄곧 바쇼의 발자취를 따르며 동행했던 제자 소라가 병으로 인해 스승과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홀로 남겨져 고독한 여정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바쇼는 만감이 교차하여 이렇게 읊었다.

    떠나는 자의 슬픔과 남는 자의 회한은, 마치 짝 잃은 기러기 한 마리가 헤어져 저 멀리 구름 속을 헤매는 듯하구나.

    길 위에서는 자연스레 온갖 만남과 견문이 따르기 마련이다. 전권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목은 나스노(도치기현)을 지나갈 때의 일이다. 길을 잃은 나그네는 그곳의 한 소박한 농부를 만나게 된다. 농부는 농사일로 바빠 직접 길을 안내해 줄 수는 없었지만, 선뜻 자신의 늙은 말을 빌려주며 길잡이로 삼게 했다. 그리고 뒤이어 펼쳐지는 야취 가득하고도 가슴 한구석을 따스하게 채워주는 정경은 다음과 같다.

    어린아이 둘이 말의 뒤를 따라 뛰어왔다. 한 아이는 어린 소녀였는데 이름이 ‘카사네’라 했다. 귀에 낯선 그 이름이 참으로 다정하게 느껴져 소라가 시를 읊었다.

    카사네란 이름 / 필시 패랭이꽃 / 겹꽃의 이름이리라.


    이윽고 인가에 이르러 말의 삯을 안장에 묶어두고 말만 돌려보냈다.


    “사람은 한가로이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밤은 고요해 봄 산이 비었구나.” 어느 시대에나 속세를 초월한 은사는 존재한다. 스카가와(후쿠시마현)이라는 곳에서 바쇼 일행은 하이쿠 시인 릿사이를 방문했다. 릿사이는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초암에 은거하는 이였다. 바쇼는 그를 위해 이러한 가구를 선물했다.

    세상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꽃이여 / 처마 밑의 밤나무.

    이이즈카 온천(후쿠시마현)에 다다랐을 때, 바쇼는 심한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묵게 된 숙소는 비가 새는 데다 모기까지 극성을 부려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가야 할 험난한 길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불안이 엄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을 바쇼였지만, 그는 자신을 채찍질하듯 이렇게 스스로를 격려했다.

    변방의 오지를 다니는 행각이란 본래 목숨을 버리는 무상의 관념을 품는 법이니, 길 위에서 죽더라도 그것은 하늘의 명이라 여겼다. 이에 기운을 조금 추스르고 사방으로 뻗은 길을 밟아 다테의 커다란 관문을 넘어섰다.

    이즈모자키(니가타현)의 바닷가에 이르러, 옛날에 유배지로 쓰였던 저 멀리 바다 위의 사도섬을 바라보며 바쇼는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장엄한 절창을 남겼다.

    거친 바다여 / 사도섬 위에 가로누운 / 은하수.

    이치후리(니가타현)이라는 곳에서는 숙소에서 우연히 두 명의 유녀와 동숙하게 된다. 청춘을 유곽에 바친 유녀와 천하를 떠도는 하이쿠 시인. 도저히 겹칠 것 같지 않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지만, 명명한 운명 속에서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바쇼는 서글픈 감회를 담아 이러한 구절을 남겼다.

    한집에서 / 유녀들도 잠드는구나 / 싸리꽃과 달.

    이것은 바로 백거이가 《비파행》에서 읊었던, “똑같이 세상 끝을 떠도는 신세이니, 만났으면 그만이지 어찌 예전부터 알던 사이여야 하겠는가”라는 경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가도카와 서점에서 나온 이 판본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구성이 대단히 풍성하다. ‘원문’은 물론이거니와 친절한 ‘현대어 번역’, ‘해설’, ‘칼럼’까지 망라되어 있다. 단순히 문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이 당시의 역사와 풍토, 인문학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에 기꺼이 추천하는 바이다.

  • 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기 좋은 책. 잠자리에 들기 전, 조용히 몇 장씩 넘겨보고 싶은 책.

  • 노년에 대하여

    노년에 대하여

    온전한 한 생을 살아낸 후에야 이토록 충만한 세계관이 응축되는 법이다.

  • 조나단 클레멘츠의 최고 걸작: 돈과 인생에 관한 클래식 칼럼

    조나단 클레멘츠의 최고 걸작: 돈과 인생에 관한 클래식 칼럼

    암 말기, 시한부 1년. 과거 《월스트리트 저널》의 투자 재테크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던 조너선 클레멘츠는 자신의 인생에 남겨진 마지막 시간을 바쳐, 14년 동안 집필한 1,009편의 칼럼 중 가장 정수만을 뽑아낸 62편의 글을 엄선했다. 그리고 이를 11가지 핵심 주제로 정리하여 우리가 지금 손에 쥔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62’라는 숫자는 어쩌면 저자가 세상을 떠날 당시의 나이와 맞춘, 의도적인 편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절로 숙연한 경외감을 자아내는 저작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이미 이 책이 가진 삶의 무게를 직감할 수 있었다. 저자의 전 생애가 녹아든 철학과 깨달음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과연 기대했던 대로 깊은 감동을 주었기에 나의 독서 채널을 통해 이 울림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