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에 관하여

스티븝 케이브

2012

철학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몽테뉴, 『수상록』


생명이란 무엇인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인간의 존재를 두고 “생명이란 두 개의 영원한 어둠 사이에 끼어 있는, 짧고 가느다란 빛의 틈새일 뿐”이라며 인간 존재에 황량한 기조를 설정했다. 이 빛의 틈새는 너무나 좁아서, 우리가 겨우 눈을 떠 세상의 윤곽을 엿보려 할 때면 벌써 황혼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하나의 진실을 보여준다. 인류 문명이라는 거대한 서사시는, 본질적으로 그 두 줄기 ‘영원한 어둠’ 사이에서 그 빛을 가능한 한 오래 붙들기 위한 우리의 몸부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불로장생을 갈망하고,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소망하며, 영혼의 불멸을 열망한다. 혹은 모든 것이 먼지로 돌아간 뒤에라도 ‘유산’이라는 이름의 여광이 조금이라도 남기를 바란다.

문명은 확실히 공포의 산물이다. 죽음을 두려워했기에 피라미드를 세웠고, 캔버스 위에 영원한 미소를 남겼으며, 의식을 클라우드에 이식하려 시도한다. 죽음은 엄격한 감독관처럼, 순식간에 변하는 시간 속에서 영원을 추출해내라며 인류를 채찍질한다. 그러나 저자는 종장에서 우리에게 주의한다. 기술이나 명성을 통해 죽음에서 도망치려는 노력은, 종종 ‘불멸’을 쫓는 길 위에서 ‘생활(삶)’ 그 자체를 잃어버리게 만든다고 말이다. 인생의 의미는 다 빈치의 저 부드러운 고백과 같을지도 모른다. “충실한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다주듯, 충실한 삶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다준다.”

친애하는 당신은 저자의 결론이 만족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겨우 이거야? 내 불안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단 말이야!” 그렇다면 시선을 돌려, 『어떡하죠, 마흔입니다』를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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